《죽은 철인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일까. 우선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죽은 철인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일까. 우선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데일리인베스트=김환영 지식전문 대기자] 우리 투자하다 지칠 때면 영웅들을 기억하자. 그들은 우리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냈다. 투자의 세계에서 나는 뭔가. 나는 ‘투자 노비’인가 ‘투자 농노’인가. 지금의 내 처치가 무엇이건 확신만 있다면 나는 ‘투자의 영웅’ ‘투자의 신’이 될 수 있다. 

《죽은 철인의 사회》를 읽었다. 부제가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스포츠 영웅들’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포츠 스타들의 부고 모음집, 혹은 미니 전기 모음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쓸지 독후감을 쓸지 고민했다. 

서평이란 무엇인가, 독후감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 서평(書評) = “책의 내용에 대한 평” 
- 독후감 = “책이나 글 따위를 읽고 난 뒤의 느낌. 또는 그런 느낌을 적은 글”

독후감이 더 쉽다는 ‘느낌학적’인 느낌이 든다. ‘느낌’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항상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책 《죽은 철인의 사회》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전국민 필독서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느낌의 흐름이요 총합이다. 

독후감이 쉬운 이유는, 독후감이 읽은 책과는 전혀 무관해도 되기 때문이다. ‘무관’해야 자유롭다. 독후감은 자유롭다. 자유는 쉽다. 예컨대 예수의 족보에 대한 ‘마태복음 1장’을 읽고 이런 독후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마태복음의 도입부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는 21세기 시선으로 보면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예수가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훌륭함을 사람들이 따르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족보가 중요했다. 예수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나오는 ‘마태복음 1장’에 대한 독후감을 쓸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집에는 족보가 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하다. 조선시대 양반은 극소수였다는데 우리 집안도 족보를 적당히 어디서 구매한 것은 아닐까. 우리 집안에는 사실 판·검사, 의사, 교수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우글거린다. 하지만 이는 결코 양반 가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상놈 집안이라는 것이 들통 날까 두려워 애쓴 결과인지도 모른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이 자신이 지옥행이 아니라 천국행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산업화·민주화를 단 한 세대에 이룬 비결은 ‘우리 집안 상놈 출신 아니다. 양반이다’를 입증하기 위해 너도나도 ‘해방 노비’들이 열심히 뛴 덕분 아닐까.”  

이러한 독후감의 자유와는 대조적으로 서평의 평(評)은 “좋고 나쁨, 잘하고 못함, 옳고 그름 따위를 평가함”이니 서평은 부담스럽다. 주제넘게 어떤 책에 대한 일종의 ‘선악’ 심판을 요구받는 느낌이다. 남에게 모진 소리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서평을 쓸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잘한 것이 많지만, 일단 제목이 좋다. 

저자는 제목의 ‘철인’에서 중의법을 사용했다. 철인(鐵人, iron man)그리고 철인(哲人 wise man, philosopher)이다. 

이 책의 영문판이 나온다면(그럴 필요 있다. 그렇게 될 것이다.) 제목은 이미 ‘Dead Iron Men Society’로 결정됐다. 부제는 ‘우리에게 영감 주는 한국의 스포츠 영웅들(Korea’s Sports Heroes Who Inspire Us)’이 될 것이다. 영문 제목에서 Society는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라고 할 때의 Society(會, 모임)다.

《Dead Iron Men Society》는 우리말로 옮기면 ‘죽은 철인 연구회’ 혹은 ‘죽은 철인 모임’이다.

‘죽은 철인’을 책 주제로 삼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다. 아무래도 ‘죽음’을 멀리 피하고 싶은 주제다. 그럼에도 정영재 작가가 그 주제로 이 책을 쓴 이유는 뭘까. 저자의 말처럼 “일세를 풍미했던 스포츠계 전설들의 마지막이 너무 쓸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한 저자는 쓸쓸함을 책을 쓰면서 극복한 듯. 

쓸쓸함과 아픔은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레슬러 김일이 수제자인 백종호 김일기념체육관 관장에게 한 이 말이었다.

“백군아, 나 머릿속에 큰 돌덩이가 있는데 그거 좀 빼주라.”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두 번째로 뭉클한 장면도 김일 선생과 관련됐다. 그는 1994년 10월 비석을 세워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된 진돗개에게 바쳤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비문이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는 나의 친구 진돗개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던 그 일은 오늘도 한없이 울고 싶어지는 나와 우리 민족 모두의 한과 비애로 남았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풀 한 포기, 개 한 마리도 외세에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박치기왕’ 김일 선생이나 ‘부산이 낳은 영원한 무쇠팔 에이스’ 최동원,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달래주고 희망과 용기를 준’ 이영민, ‘동네 형’ 임수혁, ‘시원시원하고 장난기 많은’ 조진호, ‘신사참배 거부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총에 맞아 순교한 김익두 목사님의 아드님인’ 김용식, ‘오르막길이 더 좋았던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너무 좋아 이 책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죽은 철인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일까.

우선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공무원이나 아이돌 희망자가 많은 이 사회에서는 ‘영웅’도 많이 나와야 한다. 세종대왕 같은 문화창달 영웅, 이순신 장군 같은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하는 재벌 영웅도 한없이 많이 필요하다. 워런 버핏을 능가하는 대한민국 투자 영웅을 우리는 학수고대한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일반 사람과 신들 사이의 존재다. 영웅들은 인간적 평범함(human mediocrity)을 극복하고 신적인 탁월함(divine excellence)을 향해 나아간다. 

모두가 사인여천(事人如天)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신적인 존재로 근접해 가지 않을까. 그런데 동물 중 하나, 포유류 중 하나인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영웅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가야 한다. 

이 책에는 스포츠 영웅 26명이 나온다. (고미영 고상돈 구옥희 김기수 김득구 김영희 김용식 김원기 김일 김창호 김현준 박영석 서윤복 손기정 역도산 유상철 이상천 이영민 임수혁 장명부 조오련 조진호 최동원 최정민 홍덕영)

고인이 된 스포츠 영웅이라는 점 외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용기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초·중·고·대 학생과 취준생 그리고 인생2막을 올려야 하는 은퇴자들이 읽어야 한다. 우리 모두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내가 겪는 어려움은 이분들이 이겨낸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힘내자”라고 할 것이다.  

공통점으로는 또한 일종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영화 ‘넘버 3’에서 배우 송강호가 열정적으로 설파한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이 생각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넘어섰다. 가난했지만 꿈은 가난하지 않았다.”

‘무대뽀 정신’의 대표자는 조오련이다. 1968년 목포에서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수영 명문 오산고에 무작정 찾아갔다. 1969년 전국체전 서울 예선에 수영복이 없어 사각 팬티를 입고 출전해 400m와 1500m에서 일등을 했다.

 저자 정영재는 편집기자로 사회에 나와 큰 상인 ‘한국편집기자상’을 받았지만, 스포츠 기자로 전향했다. 저자 정영재는 항상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개척자다. [사진제공=정영재]
 저자 정영재는 편집기자로 사회에 나와 큰 상인 ‘한국편집기자상’을 받았지만, 스포츠 기자로 전향했다. 저자 정영재는 항상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개척자다. [사진제공=정영재]

어떤 독자들에게는 책의 분야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저자의 매력에 끌려 저자가 새 책을 낼 때마다 온·오프라인 책방으로 향하는 독자도 있다. 저자의 전작으로 《2만원의 철학: 동네 헬스장 형 구진완은 어떻게 252억을 투자받았을까》도 있다. 저자 정영재는 편집기자로 사회에 나와 큰 상인 ‘한국편집기자상’을 받았지만, 스포츠 기자로 전향했다. 저자 정영재는 항상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개척자다. 

수많은 미래 영웅들이 이 책을 읽고 꿈을 꾸기 시작할 것이다. 수많은 ‘정영재 키즈’의 탄생을 기원한다. ‘정영재 키즈’의 수가 너무 많아 《죽은 철인의 사회》가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가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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